복숭아 알레르기 증상, 아기 몇살부터 먹을까?
이광수 작가의 소설 ‘흙’은 1930년대 당시 암울하고 황폐화 된 농촌을 계몽하기 위해 노력하는 ‘허숭’이라는 인물과 살여울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묘사하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허숭’ 이란 인물은 서울에서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였으며, 결혼에도 성공한, ' 미래가 보장된 사람' 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떠나온 고향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부와 권력을 포기하고 살여울로 내려간다. 이런 ‘허숭’ 의 행동이 나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자처해서 고통스러운 삶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그 당시 지주들에게 농토를 빼앗겨 소작농으로 전락한 농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을 통해 참된 봉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지주로부터의 수탈에서 농민들의 방패가 되어 주고, 그들과 함께 농촌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그에게 온 세대를 아우르는 희생과 타인에 대한 배려, 농촌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인 발전을 꾀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면 그는 이런 위대한 봉사의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설을 읽어가며 그 당시 농촌사회의 악이었던 지주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만일 ‘허숭’과 같은 지식인이 그 당시 농촌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였다면, 그는 귀농이라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주란 농촌사회의 악인 동시에 그 공동체 발전의 필요성을 지적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통해 참된 봉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희생정신과 개혁정신,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 ‘불편함’을 느끼게 해 주는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불의에 직면하였을 때, 바로 그 사건을 개혁하겠다고 뛰어들지 않는다면, 우리사회는 또 한 번의 발전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대수양은 계유정란을 배경으로 하여 단종과 수양대군의 이야기를 서술한 이야기다. 대수양을 쓴 김동인작가는 수양대군을 영웅으로 묘사하여 계유정란을 합리화 시키고 있다. 하지만 수양대군을 영웅으로 묘사한다고 해도 나는 수양대군이 너무 하다는 생각은 버릴 수가 없다. 아무리 단종이 양위를 자신에게 한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끝까지 만류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옳다구나 하면서 신나게 받았을 수양대군인데 이 일을 김동인 작가가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생각도 든다.
김동인 작가는 계유정란에서 수양대군을 영웅으로 묘사하지만 ‘단종애사’를 쓴 이광수 작가는 반대의 관점으로 계유정란을 바라보고 있다. 김동인 작가는 계유정란을 혁명의 일종으로 본 것이고 이광수 작가는 반란으로 바라본다. 이런 점에서 같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해도 자신의 관점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대수양의 경우에는 수양대군의 행동을 너무 미화시켰다. 실제로 수양대군은 왕이 된 후 신하들의 부추김에 따라서 단종을 죽였다고 한다. 또한 수양대군은 넘보지 말아야 할 왕의 자리를 넘본 것도 모자라서 잘못된 방법으로 왕이 되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수양대군의 행동은 김동인 작가의 생각처럼 영웅인 듯이 미화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일제강점기 때에 민족의 의식을 간접적으로나마 깨우려고 했던 시도라지만 잘못된 방법을 선택한 듯하다. 만약 내가 같은 상황에서 작가였다면 차라리 수양대군 말고 다른 인물을 선택해서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나는 계유정란에 대해 조사해보기 전에는 수양대군이 어떤 인물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 책을 읽은 직후에는 수양대군이 정말 착하고 단종을 위해 헌신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계유정란에 대해 알게 된 후에는 그 생각이 정반대로 뒤바뀌었다. 역시 소설은 그저 소설로만 생각해야겠다. 특히 역사소설은 한 사건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어 더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대수양’은 계유정란에서 수양대군과 단종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다. 다음에는 이광수 작가의 작품인 단종애사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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