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알레르기 증상, 아기 몇살부터 먹을까?
때는 바야흐로 2012년, 한글이 창제된 지 50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우리는 한글만큼이나, 아니 한글보다 더 영어가 익숙해져 있는 세대가 되어있었다. 나는 <뿌리 깊은 나무>를 읽으며 우리의 한글에 대한 소홀한 태도를 반성하면서, 한글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학자들과 세종대왕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뿌리 깊은 나무>는 훈민정음 창제를 사이에 둔 진보하려는 자와 자리를 지키려는 자의 치열한 싸움을 담은 이야기다. 성삼문과 채윤의 대화 속에 이런 말이 있다. ‘싸움에는 중단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끝까지 싸워야 하는 것이 있다. 주상전하의 전쟁은 반대하는 자들과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와의 싸움이었다. 발목을 잡는 과거를 떨치려는 싸움이었고, 한 몸 안위에 만족하며 주저앉으려는 현재와의 싸움이었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성삼문의 이 말에는 책의 내용이 다 담겨 있었다. 한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싸웠고,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온전한 우리의 소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가리온은 ‘백성과 권력을 나누려한다 그리 말했느냐? 아니다. 주상의 속마음은 책임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글을 만들어 글자를 배우게 하고 글을 아니 이제부터 스스로 구원하라? 이것이 임금의 태도인가? 백성은 오직 보살피고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다. 진짜 주상의 본심을 하나 더 이야기 해주랴? 넌 이제 백성이 귀찮은 것이다.’라며 한글을 전파하려는 왕을 조롱했다. 글자를 안다는 것이 자신의 책임일까? 분명 우리는 글자를 앎으로 이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스스로를 지키며 벌을 받는다. 안다는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대신 때때로 책임을 요구하기도 한다는 것을 책을 보고 난 뒤 느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가리온이 말한 것처럼 지옥문을 연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질서이고, 무거운 짐이 아니라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뿌리 깊은 나무>를 읽으면서 나는 한글에 담긴 세종대왕의 고뇌와, 학자들의 죽음, 그리고 선조들이 남겨 주려한 자유를 느꼈다. 하늘과 땅을 담은 우리의 글자를 나는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인간문제는 정말 끊임없이 대두되는 단어인 듯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단어인 서민경제, 노동자 파업문제 등 단어는 다르지만 결국 인간문제로 귀결되는 이런 문제들 말 그대로 문제다. 이 책에 나오는 연못인 원소는 전설에 의하면 정말 안타깝게 만들어진 연못이다.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흘린 눈물, 곡식 한 톨 배풀지 않은 첨지에 대한 원망의 눈물들이 모여 만든 연못이기 때문이다. 이젠 그 연못으로 논에 물을 대고 살아간다. 이 전설을 그 마을 모든 사람이 기억하고 느낀다. 민주혁명들을 배울 때 역사 선생님이 민주주의는 노동자, 농민들의 피땀위에 건설된 것이므로 우리들은 그 역사를 잊지 말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민주주의의 권리를 누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땐 그냥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며 건성으로 들었지만 이 책을 보고 많이 반성해야겠다고 느꼈다. 일제 강점기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여러 사람들이 기억하며 후손들에게 잊지 말라고 외치며 일제를 미워하고 잊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역시 우리가 잊기엔 너무나 큰 희생이 따랐기에 우린 그 민주주의를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느낀점은 지주들이 너무 비도덕적이라는 것이다. 지주는 마을에서 꽤나 먹어주는 사람임에도 이 책의 지주는 선비를 농락하고 괴롭힌다. 자신의 것을 나눠주긴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자신들이 누리는 특혜나 명성들을 보았을 때 나눠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서 결국 원소라는 연못이 생긴 것이 아닌가. 앞으로 나는 남에게 배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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