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알레르기 증상, 아기 몇살부터 먹을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방관자에 대한 비판에 대한 글일 것이라 예상하며 책장을 넘겨나갔다. 우리가 사용하는 방관자라는 단어는 어떤 일에 직접 나서서 관여하지 않고 곁에서 보기만 하는 사람이라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방관자적인 태도를 사회적으로 개선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면서 읽다.
누군가가 나에게 폭력을 행사사고 있다. 그런데 옆에는 그 행위를 보고만 있고 전혀 관여하지 않으며 심지어 낄낄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는 일은 피해자에게는 더욱 상처받는 일이다. 가해자가 자신을 폭행하고 있을 때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사람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낄까? 누군가가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깔깔거리고 웃는 것은 아마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것이다. 방관자라고 옆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가해와 다를 것 없는 행위를 하는 방관이도 가해와 같은 취급을 받아 마땅하다. 이처럼 방관이라는 행위는 가해 행위의 또 다른 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인데 이 책에서 보면 처음 피해자였던 인물이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폭력이라는 것에는 벗어날 수 없는 피라미드 구조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당한 것을 똑같이 남에게 갚아주고 대리만족을 하는 행위 때문에 학교폭력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인식의 변화에 달려있는 이런 문제에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 시작하면서 이는 더 미궁 속을 파고들고 있는 것 같다.
학교폭력이 심각해지면서 우리사회는 예전처럼 정이 넘치는 사회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렇게 학교폭력을 예방하기위해서 학교에서 친구사랑 글짓기, 학교폭력 추방 캠페인을 하기보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끼리 함께 뛰놀고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친구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피해자도 가해자와 친구이고 방관자도 이 둘의 친구이지 않은가? 사회가 삭막해지고 어두워질수록 이런 피해는 더욱 증가한다. 가해자와 방관자들을 탓하기 전에 먼저 우리사회를 정이 넘치고 사랑이 가득하게 밝게 비추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0
댓글
댓글 쓰기